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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인어공주 티저 예고편 공개, 논란 잠재울 수 있을까?

by DDragon 2023. 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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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리 베일리(22)가 주연을 맡은 디즈니 실사영화 '인어공주'의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인어공주역으로 흑인이 캐스팅돼 논란이 있었던 이번 실사영화에서 과연 디즈니는, 그리고 할리 베일리는 이번 논란을 잠재울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을까? 15일(현지 시간) 공개된 티저 예고편에서는 바닷속 환상적인 모습과 인어공주와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킹)가 만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악한 마녀 우르술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약 100일 앞으로 다가온 인어공주의 개봉을 앞두고 아직도 많은 논란이 있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디즈니의 입장이 굉장히 노골적이기 때문에 아마도 누구든 한 번쯤은 들어본 문제가 아닐까 한다. 더욱이 인어공주라는 동화와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도 굉장히 유명하기 때문에, 캐스팅부터 문제가 되었던 이번 이슈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흑인이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일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인종의 문제가 아니라 인어공주라는 콘텐츠 IP의 문제라는 말이다. IP, Intellecual Property라는 지식재산권이 그것이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인어공주를 백인으로 알고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지내온 많은 사람들로부터  흑인 인어공주라는 대상은 인지부조화 또는 심한 경우 큰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유로 기존의 인식을 뒤바꾸고 재해석하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나아가 그것에 대해 거부하는 것을 마치 죄인양 몰아가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가 된다.

 

· 정치적 올바름이란?

 

  정치적 올바름이란 PC, Political Correctness의 약자로서 인종과 성별, 종교, 성적지향, 장애, 직업 등과 관련해 소수 약자에 대한 편견이 섞인 표현 등을 지양하자는 사회적 운동이다. 나아가 이러한 편견에 맞서 싸우는 모든 활동 또한 포함될 것이다. 일견 이들의 활동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사회에 뿌리 박힌 편견을 깨부수고 소수와 약자의 편에 서서 정의를 실현하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름 아래 활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활동이 대의를 위하고 있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가 정치적 올바름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논하려는 자리는 아니다. 다만 그들의 활동 방식에서 일정한 문제를 제기하기 위한 것은 맞다. 결과적으로 소수를 위한다는 그들의 대의는 다수의 거부감과 불편함을 기반으로 일어서야 하기 때문이다.

 

·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라는 말인가? 그에 대한 답은 사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인어공주의 예가 나왔기 때문에 특히나 많은 문제가 되고 있는 백인을 주인공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 IP의 흑인 주인공 캐스팅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 

 

  인어공주가 백인이라는 사실은 사실 특별할 만한 설정은 아니다. 절대다수의 서구 문학은 백인이 주인공이었고, 그것이 당연했으니까. 결국 문학은 대중을 향해 있고, 대중이 소비하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으니까. 그러므로 서구권에서 다양한 소수의 문제가 등장하기 전까지 백인이 주인공이 되는 문화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다. 바꿔 말하면 이제 다양한 소수의 문제가 등장하고 있으므로 백인이 주인공이 아닌 문화 역시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백인 주인공이 당연했던 과거와 달리 흑인 주인공도 당연한 문화가 되었다면 흑인 주인공을 위한 이야기가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흑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백인 주인공 문화들을 흑인 주인공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한 시도에 다들 어색해하면서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인종을 초월한 새로운 이야기가 등장하고 거기에 흑인 주인공이든 백인 주인공이든 누가 등장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면 말이다. 

 

· 대중은 추억의 변질보다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대중은 추억의 변화보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원한다. 대중의 소비에서 추억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작지 않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이야기들을 추억하고 그에 관한 소비를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은 그들의 자녀, 자녀의 자녀로 이어진다. 켜켜이 쌓여 있는 추억은 그만큼 공고하고 단단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대중의 추억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 

  추억이란 이름으로 기억 한편을 차지한 이야기들을 변화시켜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일은 이제 너무도 식상하다. 심지어 대중은 이것을 변화가 아니라 변질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러한 변화 자체가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은 무엇인가를 비틀고 변질시키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이 추구하는 이야기는 결국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의 흐름'을 가져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IP를 만들어냄으로써 소수의 이야기가 대중의 시선을 이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도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간판이 가진 힘은 강력하다. 당대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도 이 구호 앞에서는 소신껏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다. 소수에 대한 억압에 동조한다는 타이틀은, 편견과 편협한 사고에 젖은 지식인이라는 굴레는 쉽게 벗을 수도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문제와는 별개로 대중은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에 힘들고 지쳐 있다. 각자의 편차는 있겠지만, 결국 대중의 피로도는 임계점에 다다랐고, 곧 다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피로도를 개선할 새로운 방식의 접근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필자 역시 어떠한 대안이나 변곡점을 제시할 수는 없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시류에 편승해 너희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은 쓸모없는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싫기 때문이다. 무책임하게 보일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대중의 입장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나의 피로도를 매개로 너의 주장을 강요하지 마라'는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새로운 이야기'가 재미있으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정치적 올바름으로 무장한 이야기가 단단하게 자리 잡은 '추억의 이야기'를 변질시키기만 한다면 불편하고 불편하다가 결국에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하기 위해서 스스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심도 있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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